또 걷고 싶은 길, 낙동강변을 따라 - 14일

황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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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0일 일요일 흐린 하늘 아래서 걷기를 시작한 아침이었다. 구미역에서 왜관역까지의 길은 국도를 따라 20km. 하지만 나는 낙동강 자전거길을 택했다. 더 멀고, 더 돌아가는 25km의 길. 대신 강을 따라 걷는 그 고즈넉한 풍경이 나를 끌어당겼다.44223dfe14462.jpg

다이소에서 구입한 바퀴 수레에 배낭을 묶고, 어깨를 비워냈다. 구미천을 따라 낙동강으로 향하는 길, 아침 7시 45분. 수레가 미는 무게는 있었지만 발걸음은 전날보다 가벼웠다. 구름이 가린 햇빛 덕에 선크림도, 선글라스도 필요 없었다.5a888d50834a7.jpg

걷는 길가, 낚시하던 중년의 남성이 커다란 물고기를 자전거에 싣고 있었다. “어디서 잡으셨어요?” 하고 묻자, 그는 웃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내가 왜관까지 걸어간다고 하자 현수막을 들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낯선 길 위에서 나누는 뜻밖의 인연이 퍽 정겹다.

구미천의 물고기들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나도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유튜브에서 강산에의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을 찾아 듣는다.

“걸어, 걸어, 걸어가다 보면 / 어느 날 그 모든 일들을 감사해하겠지”710e277526701.jpg

발바닥은 점점 딱딱해지지만,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왜 연어는 물결을 따라가지 않고 굳이 거슬러 올라가는 걸까. 나는 이 길에서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4afd579d21ed5.jpg

드디어 낙동강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했던 그 길, 그 풍경이 다시 반갑게 다가온다. 공단을 따라 걷는 낙동강 자전거길. 길가에는 ‘전자공업단지 조성 기념비’가 서 있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문구가 새겨져 있다. 1970년대 산업화의 상징인 구미의 얼굴이다.

11시 50분, 남구미대교를 건너자 ‘칠곡군’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낙동강의 또 다른 이름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칠곡 구간의 자전거길은 특히 아름답다. 한참을 걷다 잠시 멈춰 현수막을 펼쳐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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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투에 대한 안내판도 만났다. 369고지, 154고지, 홀소나루 전투. 모두 1950년 8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치열한 전투의 현장들이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스러졌을까. 지금은 파크골프장으로 바뀌었지만, 안내문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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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50분, 칠곡보 생태공원에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가족 나들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잔디밭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칠곡보 인증센터, 호국평화기념관을 지나며 걷는다. 이 길은 단지 강을 따라 난 자전거길이 아니라, 역사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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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호국의 다리’에 도착한다. 왜관철교의 한 칸을 폭파해 북한군을 저지하고, 낙동강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는 이야기. 그 이름처럼 호국의 상징이 되었다.

6시, 드디어 왜관역에 도착해 현수막을 펼쳤다. 오늘의 걸음 수는 42,729보, 거리로는 32.77km.
그리고 ‘왜관’이라는 이름의 어원을 검색했다. 조선시대 왜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다는 뜻. 이름부터 역사까지, 모든 게 한국전쟁과 산업화, 그리고 이 땅의 지난 시간을 품고 있다.

이 길은, 또 걷고 싶다.
친구와 함께, 왜관역에서 출발해 구미역까지.
그렇게 다시 걷는다면, 오늘의 발바닥처럼 딱딱해지더라도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대단한 사람들의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온 세월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을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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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