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도착, 그리고 긴 여정의 끝 - 22일차

황성국
조회수 187

ac9c61ce630ec.jpg

붉은 티셔츠를 입고,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다 


91d481932d763.jpg

2025년 4월 28일 금요일 드디어 오늘, 부산역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이제 남은 여정은 사상역과 부산역, 딱 두 곳이다.
구포역에서 사상역까지는 도보로 5.2km, 자전거 길은 6.6km, 사상역에서 부산역까지는 12km이다.

휴대폰에 담긴 MP3 음악을 들으며 출발 채비를 했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마지막 날이다. 어제 파란색 티셔츠를 입었으니, 오늘은 빨간색 티셔츠이다.
서울역을 출발하던 첫날에는 흰색 티셔츠를 입었었는데, 그 후로는 파란색과 빨간색을 번갈아 입으며 걸어왔다.

19일차에 만났던 젊은이는 부산에 도착하면 해운대에서 하루 쉬었다가 KTX를 타고 서울로 간다고 했다.
나는 부산역에 도착하면 김해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갈 거라고 했었다.
부산역에서 김해공항까지 또 걸어가냐고 물었고, 나는 웃으며 버스와 지하철도 탈 줄 안다고 했다.

김해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을 검색해 보니, 오후 6시 20분에 출발하는 에어부산 항공편이 있었다.
1시간 전인 5시 20분까지 김해공항에 도착해야 하고, 부산역에서는 4시 20분쯤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후 4시까지는 부산역에 도착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시간에 쫓길 것 같아 비행기 예약은 하지 않고, 오후 4시를 부산역 도착 목표 시간으로 정했다.


e9a39421123d4.jpg오전 9시 10분, 구포역에서 출발 사진을 찍었다.
구포역에서 사상역으로 향하는 자전거 길은 익숙한 길이다.
구포역 낙동강 제방을 ‘구포뚝’이라고 하였다. 

2ef4824e7ee69.jpg

구포뚝은 자전거 길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사람들이 다니고 있다.
자전거 길 옆으로는 낙동대로가 쭉 뻗어 있다.
김해에서 123번, 122번 버스를 타면 저 도로를 따라 부산 충무동, 자갈치시장까지 간다.
많이 타고 다닌 버스 노선이다.

전에 없었던 도로가 낙동강 제방 안쪽에 새로 생겨 많은 차들이 다니고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며 걷다 보니, 지나간 시절의 추억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68b98d992573b.jpg

추억을 곱씹으며 걷고 있는데,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 한 분이 "구포역에서부터 걸어오시던데, 어디까지 가시냐"고 물으셨다.
그 어르신도 구포역에서부터 걸어오시면서 배낭을 끌고 가는 나를 보셨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길동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었다.

43년생이시라는 어르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결혼하고 딸 하나를 낳은 후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수송병으로 운전을 배워 평생을 운전하며 사셨다고 했다.
버스도 운전하고, 짐차도 운전하셨다고.
특히 큰 나무, 원목을 싣고 운전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고 회상하셨다.
당시에는 전부 월급쟁이 운전기사라, 부산에서 짐을 싣고 서울이나 강원도까지 가서 짐을 내리고, 다시 돌아올 짐이 생길 때까지 그곳에서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한번 집을 나가면 일주일 정도 걸리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비포장도로도 많아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위험한 운전이었다고 하신다.
부산 시내 길은 손바닥 보듯 훤히 아신다고 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아침에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거나, 길을 걸으며 시간을 보내신다고 했다.

오전 11시 15분,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자신의 휴대폰으로 보내주면 좋겠다고 하셔서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사진을 보내드렸다.
어르신은 시간이 많으니 쉬었다 가시겠다고 하셨고, 나는 배낭에서 비상 간식 하나를 건네드리고 인사를 나눈 후 다시 길을 나섰다.

낙동강 자전거 길이 하구둑까지 8km 남았다는 안내판을 보고, 나는 방향을 틀어 사상역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시내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낙동강 자전거 길이 너무 고마웠다.


4be77aa4674ca.jpg

12시, 사상역에 도착하여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찍었다.
부산역으로 가는 길은 내가 익히 아는 길이다.
서면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12시 50분, 재첩국을 파는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어릴 적 아침마다 "재첩국 사이소"라고 외치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오후 3시에는 일신기독병원을 지나쳤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았던, 부산에서는 꽤 유명한 산부인과다.
그 시절 추억이 떠올라 사진을 찍었다.


66dee96bc13ff.jpg

길가에 붉은 동백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부산을 상징하는 꽃이다.
그냥 갈 수 없어 사진을 찍었다.

‘부산찬가’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갈매기 떼 나는 곳, 동백꽃도 피는 곳, 아 너와 나의 부산"

‘동백꽃 피는 부산’이라는 노래도 생각난다.
"찬란한 아침해가 오륙도를 비추면"
이 노래는 그 당시 청소차들이 아침마다 틀었는데, 이 노래 소리를 들으면 쓰레기를 들고 나가서 비웠다.
연탄재, 생활쓰레기를 가지고 가서 차에 실어 보냈다.


1c176106fd1df.jpg

오후 3시 42분, 드디어 부산역에 도착했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현수막을 펼쳐 완주 기념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으로 걸음 수를 확인하니 31,620보, 이동 거리는 24.12km였다.

서울역을 출발한 지 22일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비가 와서 이틀을 쉬었으니, 실제로 걸은 날은 20일이다.

비행기 시간을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오후 6시 20분 비행기는 없고, 오후 7시 55분에 출발하는 제주항공편이 있었다.
이 비행기를 타면 김포공항에 밤 9시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 KTX를 타면 3시간 안에 서울역에 도착할 수 있으니, 비행기보다 더 빨리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비행기를 예약했다.
부산역에서 6시에 출발하면 되니 2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부산역 도착 사진을 응원해 주신 분들에게 보내드렸더니, 많은 분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이분들의 응원 덕분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현수막을 디자인해서 만들어주신 사진영상디자인협동조합 이사장님,
동작팡팡에 글과 사진을 편집하여 매일같이 올려주신 이사님,
선크림을 주시며 챙겨 바르라고 하신 대표님,
아이스아메리카노 사먹으라고 챙겨주신 회장님,
그리고 항상 응원해 준 황 패밀리,
그 외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이 생각났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밀면 한 그릇을 먹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광장에서 부산역 건물을 바라보았다.

부산역 광장에서 해질 무렵 친구들과 모여 노래를 부르며,
늦은 밤 입영 열차를 타고 논산훈련소로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도 떠오른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 정거장.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부산역을 자주 왔다.
KTX가 생긴 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부산을 오가기도 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 40분, 가장 빠른 것은 2시간 20분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직원들이 "KTX 타고 부산 가면 재미있겠다"고 말하곤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타는 것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 타면 아무 생각이 없다.
좌석에 앉자마자 잠이 들고, 눈 뜨면 서울역에 도착했다.
지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갔다.

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부부가 부산역으로 나왔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걸어서 완주 축하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차로 김해공항까지 편안하게 데려다주었다.

오후 7시 55분 제주항공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밤 9시에 도착했고, 9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10분이었다.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혼자 걷기는 끝났다.
4월이 다 지나갔다.


17c3d6888dcfe.jpeg

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