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걸을 거리를 확인했다. 아포역에서 구미역까지 8km, 구미에서 왜관까지 20km. 총 28km면 어제만큼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창밖으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8시 50분, 어제 도착했던 아포역으로 돌아가 출발 사진을 찍었다. 햇볕이 강해서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까지 챙겨 썼다. 서울은 비가 온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지만, 이곳은 한여름처럼 맑았다.

아포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지방도는 차량 통행이 많았지만 인도가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무리가 없었다. 10시를 넘기자 ‘구미시’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김천을 지나 이제 구미에 들어선 것이다. 길가 밭에는 보리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고, 어르신들이 농사일에 분주했다.

걷다 보니 돌에 새겨진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 아버지의 집’
무슨 뜻일까. 주변을 둘러봐도 설명 하나 없었다. 그저 삶의 흔적이, 사연이 이 길가에도 놓여 있다는 사실이 나를 한참 동안 멈춰 세웠다.
한참을 걷던 중, 밭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내 배낭을 보고 한마디 던지셨다.
“낚시하러 가는가나요?”
피식 웃으며 “아닙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걷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길가에 앉아 한참 동안 이어졌다. 나이를 묻길래 80세쯤 되셨냐고 여쭸더니, “아니야, 아직 79야”라며 웃으셨다. 철도 회사에서 침목을 나르며 일하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셨고, 내 여정에 대해선 “서울에서 부산까지 441.5km지”라며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짧지만 깊은 대화였다.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11시가 조금 지나, 12,000원짜리 뷔페 식당을 발견했다. 나물, 수육, 볶음밥, 미역국. 익숙하고도 따뜻한 음식들이 배를 채워주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오늘 목적지였던 왜관까지 갈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일단 구미역까지 가서 숙소를 정해도 늦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오 무렵, 구미역 도착.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주변을 서성이다가 겨우 현수막을 펼쳤다.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려는 찰나,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속도 불편했다. 날이 더워서일까? 아니면 걷기 무리가 왔던 걸까. 오후는 걷지 않기로 했다.
숙소를 찾았지만 대부분 5시 이후 입실 가능이었다. 배낭을 멘 채 숙소를 찾다, 다행히 사정을 들은 사장님이 방을 내주셨다. 씻고 누운 침대 위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박완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4 후퇴 당시, 어린 동생을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르는 언니 이야기다. 마음 한켠이 저릿했다.

저녁 무렵,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로기 상태라는 말이 떠올랐다. 몸의 피로가 아니라, 집중력과 정신의 무게가 바닥으로 떨어진 느낌. 어깨는 버틸 만했지만, 배낭 무게가 발바닥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바퀴 수레를 하나 샀다. 얇은 여름 티셔츠도 사고, 소화제도 챙겼다. 어떻게든 내일을 위한 준비였다.
오늘은 18,486걸음. 거리로는 13.90km. 아침엔 왜관까지 갈 줄 알았는데, 결국 구미에서 멈췄다. 그래도 괜찮다.
“빨리 가서 뭐할껴.”
오늘은 쉬었으니 내일은 다시 힘차게 걸을 수 있겠지. 나는 또 걸을 것이다.
싼티, 아 고고.

용기백배 황성국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걸을 거리를 확인했다. 아포역에서 구미역까지 8km, 구미에서 왜관까지 20km. 총 28km면 어제만큼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창밖으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8시 50분, 어제 도착했던 아포역으로 돌아가 출발 사진을 찍었다. 햇볕이 강해서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까지 챙겨 썼다. 서울은 비가 온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도착했지만, 이곳은 한여름처럼 맑았다.
아포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지방도는 차량 통행이 많았지만 인도가 잘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무리가 없었다. 10시를 넘기자 ‘구미시’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김천을 지나 이제 구미에 들어선 것이다. 길가 밭에는 보리가 푸르게 자라고 있었고, 어르신들이 농사일에 분주했다.
걷다 보니 돌에 새겨진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 아버지의 집’
무슨 뜻일까. 주변을 둘러봐도 설명 하나 없었다. 그저 삶의 흔적이, 사연이 이 길가에도 놓여 있다는 사실이 나를 한참 동안 멈춰 세웠다.
한참을 걷던 중, 밭에서 일하시던 어르신이 내 배낭을 보고 한마디 던지셨다.
“낚시하러 가는가나요?”
피식 웃으며 “아닙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걷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길가에 앉아 한참 동안 이어졌다. 나이를 묻길래 80세쯤 되셨냐고 여쭸더니, “아니야, 아직 79야”라며 웃으셨다. 철도 회사에서 침목을 나르며 일하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셨고, 내 여정에 대해선 “서울에서 부산까지 441.5km지”라며 정확하게 짚어주셨다. 짧지만 깊은 대화였다. 나는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11시가 조금 지나, 12,000원짜리 뷔페 식당을 발견했다. 나물, 수육, 볶음밥, 미역국. 익숙하고도 따뜻한 음식들이 배를 채워주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오늘 목적지였던 왜관까지 갈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아직 시간이 있었지만, 조금 피곤했다. 그래서 일단 구미역까지 가서 숙소를 정해도 늦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오 무렵, 구미역 도착.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주변을 서성이다가 겨우 현수막을 펼쳤다.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려는 찰나,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속도 불편했다. 날이 더워서일까? 아니면 걷기 무리가 왔던 걸까. 오후는 걷지 않기로 했다.
숙소를 찾았지만 대부분 5시 이후 입실 가능이었다. 배낭을 멘 채 숙소를 찾다, 다행히 사정을 들은 사장님이 방을 내주셨다. 씻고 누운 침대 위에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박완서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4 후퇴 당시, 어린 동생을 남겨두고 피난길에 오르는 언니 이야기다. 마음 한켠이 저릿했다.
저녁 무렵,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로기 상태라는 말이 떠올랐다. 몸의 피로가 아니라, 집중력과 정신의 무게가 바닥으로 떨어진 느낌. 어깨는 버틸 만했지만, 배낭 무게가 발바닥에 몰려 있었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바퀴 수레를 하나 샀다. 얇은 여름 티셔츠도 사고, 소화제도 챙겼다. 어떻게든 내일을 위한 준비였다.
오늘은 18,486걸음. 거리로는 13.90km. 아침엔 왜관까지 갈 줄 알았는데, 결국 구미에서 멈췄다. 그래도 괜찮다.
“빨리 가서 뭐할껴.”
오늘은 쉬었으니 내일은 다시 힘차게 걸을 수 있겠지. 나는 또 걸을 것이다.
싼티, 아 고고.
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