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속에서 멈춰선 하루, 그리고 7일의 되돌아봄] - 8일차

황성국
조회수 20

2025년 4월 14일, 월요일.
전국에 때 아닌 눈과 우박이 내린다는 뉴스에 창밖을 보니, 벚꽃잎들이 비와 함께 흩날린다. 예기치 않은 봄날의 변덕스러운 풍경. 하늘조차 쉬어가라 손짓하는 듯하다. 오늘은 더 걷지 않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어느덧 대전광역시 근처, 신탄진역까지 닿았다. 계획대로라면 어제 대전역에 도착했을 터, 그러나 햇살 좋던 날도, 비 내리는 길도 모두 이 여정의 일부였다. 자전거길을 따라 하천변을 걷는 길이 더 멀어도, 더 아름다웠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여정은 ‘도착’이 아니라 ‘걷는 일상’ 그 자체였으니까.

이번 길 위에서 가장 많은 것을 준 건 사람들의 응원이다. 서울역을 함께 출발한 이들, 먼 길 전철 타고 와서 동행해 준 벗, “싼티아고”라는 이름을 선물해 준 친구, 그리고 카톡 하나로 마음을 건넨 이들까지. ‘현수막 아래’ 이름을 새긴 협동조합, 책방, 지역 커뮤니티, 친구, 가족들. 그 이름 하나하나가 뿌연 안개 속 이정표처럼 내 발걸음을 잡아주었다.

“빨리 가서 뭐하껴.”
걷는 내내 되뇌는 말이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천안 삼거리를 지나며 걷던 국도 1호선의 위험한 갓길도, 자전거길의 햇살 가득한 풍경도 모두 기억의 필름으로 남는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는 전철 노선을 따라 비교적 안전한 길이었지만, 그 이후는 길을 고르고 또 골라야 했다. 이따금 앱을 보며 길을 잘못 들기도 했고, 되돌아나오기도 했다.

걷다 보면 보이는 안내판.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그리고 이름 모를 마을의 역사까지. 이 길 위엔 이름 붙일 수 없는 많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그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번 여정의 목적은 그런 기록이 아니었지만, 무심한 듯 지나치며도 가슴 한편에 스며들었다.

몸은 여전히 괜찮다. 첫날엔 허벅지가 뻐근했지만, 며칠 지나니 발만 아플 뿐이다. 새로 산 트레킹화 대신 익숙한 헌 신발이 더 편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익숙한 신발조차도 걷는 시간엔 어김없이 발바닥을 아프게 만든다. 걷기란 결국 아픔과 익숙함 사이를 넘나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마 지금까지 여정의 3분의 1쯤 왔을 것이다. 대구에 닿으면 3분의 2. 대전과 대구 사이, 그 길은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낯선 땅이다. 설령 도중에 멈춘다 하더라도, 이 7일의 기록은 나를 충분히 자랑스럽게 한다.

걸음을 멈추고 앉아 뒤를 돌아본다. 다시 오지 않을 자리, 다시 겪지 못할 시간. “하고 싶은 짓하며 살리라”는 다짐이 마음을 채운다. 꽃비 속 멈춤이 준 하루, 그것은 다시 걷기 위한 숨 고르기였다.



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