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철학을 담은 하루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비는 아침부터 쉼 없이 내렸다. 기상청은 ‘여름 같은 요란한 봄비’라고 했고, 뉴스는 이를 ‘반가운 해갈’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걷고 있는 나에게 이 봄비는 단순한 날씨의 변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선물이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가 귓가에 흐른다.
2014년 개봉한 <와일드>.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약 4,000km를 혼자 걷는 여인의 여정은,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늘 다시 떠오른다. 그도 나처럼 걸으며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난 달팽이보다 차라리 참새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거야
벌써 16일째다. 서울역을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대구, 서대구역 인근. 남은 거리는 약 150km.
대전이 전체 여정의 1/3이라면, 대구는 2/3 지점이다. 무리하지 않으면 6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걷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빠르게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 국도보다는 자전거길을, 위험한 길보다는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건 걷는 그 자체다.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한 기념비 하나,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지나가며 말을 붙여오는 낯선 이의 인사. 이 모든 것이 길 위의 선물이다. 돌아가는 길이라도 풍경을 담고, 사유를 더하며 걷는 것이 더 좋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영동에서 출발해 추풍령까지. 황간역에서 먹은 올갱이국밥으로 기운을 내며 걷다, 추풍령 근처 숙소를 찾으려 했지만 앱에는 정보가 없었다. ‘야놀자’에서 어렵사리 발견한 숙소는 역에서 3km 떨어진 곳.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갈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를 지나, 계속되는 오르막.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도착한 곳. 건물은 여러 채, 나는 그중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예약했는데요.”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텐트는 가지고 오셨어요?”
그곳은 캠핑장이었고, 나는 텐트 없이 왔다.
결국, 단체 손님용 독채 펜션에 나 혼자 묵었다.
그날 밤 식사는 햇반 하나와 컵라면 하나.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지금은 그저 고마운 기억이다. 숙소에 도착한 것,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는 배낭도 바퀴 수레에 묶어 끌고 다닌다. 어깨가 편해졌고, 국도를 걸을 때는 경광봉과 현수막을 부착해 안전을 지킨다. 걷는 이의 가장 큰 무기는 체력보다도 ‘지속 가능성’이다.
발바닥은 아직도 아프지만, 그 고통마저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삶도 그랬다. 뜻대로 되지 않던 날들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그것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훗날 나의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용기백배 황성국
걷기의 철학을 담은 하루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비는 아침부터 쉼 없이 내렸다. 기상청은 ‘여름 같은 요란한 봄비’라고 했고, 뉴스는 이를 ‘반가운 해갈’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걷고 있는 나에게 이 봄비는 단순한 날씨의 변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선물이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가 귓가에 흐른다.
2014년 개봉한 <와일드>.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약 4,000km를 혼자 걷는 여인의 여정은,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늘 다시 떠오른다. 그도 나처럼 걸으며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I'd rather be a sparrow than a snail
난 달팽이보다 차라리 참새가 되고 싶어
Yes I would, if I could, I surely would
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거야
벌써 16일째다. 서울역을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지금은 대구, 서대구역 인근. 남은 거리는 약 150km.
대전이 전체 여정의 1/3이라면, 대구는 2/3 지점이다. 무리하지 않으면 6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걷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빠르게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까. 국도보다는 자전거길을, 위험한 길보다는 우회하는 길을 택한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건 걷는 그 자체다.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한 기념비 하나,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지나가며 말을 붙여오는 낯선 이의 인사. 이 모든 것이 길 위의 선물이다. 돌아가는 길이라도 풍경을 담고, 사유를 더하며 걷는 것이 더 좋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영동에서 출발해 추풍령까지. 황간역에서 먹은 올갱이국밥으로 기운을 내며 걷다, 추풍령 근처 숙소를 찾으려 했지만 앱에는 정보가 없었다. ‘야놀자’에서 어렵사리 발견한 숙소는 역에서 3km 떨어진 곳.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갈 수 있다’는 마음 하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를 지나, 계속되는 오르막.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도착한 곳. 건물은 여러 채, 나는 그중 사무실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예약했는데요.” 직원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텐트는 가지고 오셨어요?”
그곳은 캠핑장이었고, 나는 텐트 없이 왔다.
결국, 단체 손님용 독채 펜션에 나 혼자 묵었다.
그날 밤 식사는 햇반 하나와 컵라면 하나. 웃지 못할 이야기지만, 지금은 그저 고마운 기억이다. 숙소에 도착한 것, 몸을 눕힐 수 있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는 배낭도 바퀴 수레에 묶어 끌고 다닌다. 어깨가 편해졌고, 국도를 걸을 때는 경광봉과 현수막을 부착해 안전을 지킨다. 걷는 이의 가장 큰 무기는 체력보다도 ‘지속 가능성’이다.
발바닥은 아직도 아프지만, 그 고통마저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삶도 그랬다. 뜻대로 되지 않던 날들이 지나고, 시간이 흐르면 그것조차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걷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훗날 나의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