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따라 길 따라, 삼랑진을 지나 원동까지 - 20일차

황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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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6일 토요일 아침 8시 25분, 밀양역 플랫폼 앞에서 오늘 여정의 출발 사진을 남겼다. 목표는 삼랑진역을 거쳐 원동역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약 31km를 걷는 것이다.

역 앞을 나서자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어제 만났던 국토 종주 중인 젊은이. 반가운 마음에 불러보았지만, 이어폰을 꽂은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뛰어가고 싶었지만, 발바닥 통증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 각자의 길을 가는 거지.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 식당을 찾았다. 밀양에 왔으니 돼지국밥을 먹어야 한다는 한 무리의 말에 동의하며, 나도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진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넣으니 비로소 몸이 깨어났다.

밀양강을 건너자 본격적인 자전거 길이 시작되었다. 쭉 뻗은 길 위로 토요일 아침을 즐기는 자전거들이 씽씽 지나간다. 삼각대를 꺼내어 잠시 멈추고 사진을 남겼다. 무겁지만 안전한 삼각대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 길 위의 순간을 소중히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들판엔 초록 보리가 가득했다. 20일 사이 이렇게 자란 것일까, 아니면 남쪽의 기운이 더 빠른 것일까. 기차가 강 건너를 달린다. 아침마다 힘차게 달려가는 기차들을 바라보며, 나도 함께 응원을 받은 것 같았다.

걷는 동안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본다.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복한 노년이란 무엇일까.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공짜 점심, 비밀, 그리고 정답. 그래서 오늘도 답을 찾기보단, 질문을 품고 걸었다.

11시가 넘어 낙동강 자전거길로 다시 들어섰다. 왜관을 지나 대구로 방향을 틀면서 이 길을 떠났었는데, 다시 돌아온 길목은 마치 고향처럼 반가웠다.

삼상교를 건너면서 삼랑진역까지 가는 지름길도 있었지만, 나는 멀더라도 자전거길을 택했다. 국도 대신 강변을 따라 걷고 싶었다. 이 길은 길을 묻지 않아도 되었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었다.

길가 쉼터에서 자전거를 세운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부산에 사시는 분이란다. 합천댐까지 가려다 힘들어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업 이야기, 집 짓는 이야기, 전기자전거 타령까지. 묻지도 않았지만 그는 쏟아냈다. 나이가 들면 강의보다 이야기가 하고 싶다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삼랑진 시내로 들어가자 매연과 열기에 지쳤다. 2시 20분, 삼랑진역에 도착해 인증 사진을 남겼다. 시원한 것이 당겨 막국수 한 그릇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아직 남은 거리는 12km. 다가오는 오후 햇살은 뜨거웠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낙동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가던 길을 멈추고 몇 번이나 사진을 찍었다. 강을 따라 걷다 보니 학창시절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들이 문득 떠올랐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배사공"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강마다 얽힌 사연과 노래를 되뇌며 걷는 길은 유년의 기억까지 데려갔다.

절벽을 따라 놓인 테크 길을 지날 땐, 혼자라 다소 무서웠지만, 곧 '우리가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선배시민의 슬로건이 떠올랐다. 없는 길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5시 5분, 밀양을 벗어나 양산으로 들어섰다. 부산까지 17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보았다. 그렇게 해가 기울 무렵, 6시 40분 원동역에 도착했다.

원동은 미나리로 유명하다. '1박 2일'에도 소개된 식당에서 미나리 삼겹살을 주문해 저녁을 먹었다. 쌉싸름한 미나리와 삼겹살의 조화는 지친 몸에 작은 위로가 되었다.

오늘 걸은 거리, 35.47km. 46,550보.
길 위에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 숫자들이다.


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