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동에서 구포까지
2025년 4월 27일 일요일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 오늘은 원동역에서 물금역을 거쳐 구포역까지, 약 25km 여정을 계획했다. 길이 정비된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천천히 걸을 생각이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세시봉 친구들'의 노래를 틀고,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맞췄다.
숙소를 나서는데 여주인께서 창문을 열고 인사를 건넨다. "자전거 타고 오신 줄 알았어요. 걸어서 오셨군요." 편의점 하나 없는 시골마을, 삼거리 식당을 알려주시며 아침 인사를 건네셨다. 따뜻한 인심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원동마을은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났다. 웅장한 산을 뒤로 하고, 낙동강이 잔잔히 흐르는 풍경. 작은 마을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있어 추어탕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주인은 이 마을이 매화와 미나리 축제로 유명하다며, 축제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고 했다.

9시 30분, 원동역에 도착해 인증사진을 남겼다. 역 앞 안내판에는 "낙동강 낙조와 함께하는 원동마을"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별 기대 없이 오른 '낙동강 조망 테크길'은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자전거 여행객들도 포토존에서 저마다 포즈를 잡으며 추억을 남긴다. 나도 삼각대를 펼쳐 기념사진을 찍었다.
길을 걷다 시비 하나를 발견했다. 홍수진 시인의 시였다. 알고 보니 가수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실제 모델이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바닷가 오두막에서 푸른 파도를 마시며 살았다는 친구 이야기. 나도 그런 '낭또'의 삶을 꿈꾼 적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윤현진 순국기념비'와 '박정숙 전적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궁금증에 스마트폰을 켜 찾아봤다. 윤현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고, 박정숙은 한국전쟁 당시 첩보활동 중 전사한 여성이다. 이 작은 마을에도 역사의 무게가 스며 있었다.
한낮이 되자 햇볕은 뜨거워졌다. 2차선 도로 갓길을 따라 걷는 길은 고됐다. 우연히 만난 딸기 판매 어르신께서 "요즘 농약 안 치니 바로 먹어도 괜찮다"며 싱싱한 딸기를 권해주셨다. 그늘에 앉아 딸기 한입 베어 물며, 귀농해 농사를 짓는 딸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까지 걸어왔다니 놀라시며 힘내라 격려해주셨다. 길 위의 만남은 짧아도 마음을 데운다.

다시 낙동강 자전거길로 접어들었다. '수라도' 문학현장 표식판이 눈에 띈다. 소설가 김정한이 낙동강 하류를 배경으로 그린 비극의 역사, 언젠가 시간을 내어 꼭 읽어보고 싶다.
1시 15분, 양산 물문화관 앞 국토종주 자전거 인증센터에서 잠시 쉬었다. 예전에 자전거로 국토종주하며 도장을 찍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자전거길은 편의시설이 드물다. 배가 고파 1시 40분쯤 식당을 찾아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2시 15분, 물금역 도착. 황산공원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4시 40분, "현 위치 부산"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부산 땅에 들어선 것이다! 카메라로 표지판을 찍고,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길 위에서 받은 수많은 응원들이 오늘을 만들었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김해에서 태어났지만, 국민학교 시절 4년을 부산에서 보냈다. 이후 청춘의 7년, 그리고 다시 8년. 총 20년을 부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때로 나는 스스로를 '부산 머시마'라고 부른다.
6시 무렵, 화명역을 지나쳤다. 화명 신도시 개발로 새로 생긴 역이다. 화명과 구포는 신도시로 탈바꿈해, 어린 시절 기억 속 구포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구포역이 가까워질수록 낙동강 위로 해가 뉘엿뉘엿 내려앉았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저녁이다. 아쉽게도 멋진 노을은 없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에도 저녁은 찾아왔다. 인생이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그냥 인생이니까.

7시 10분, 구포역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린 역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남겼다. 오늘의 걸음은 45,482보, 34.53km였다.
오늘, 그리고 이 긴 여정에서 남은 것은 발자국들. 이런 흔적이 결국 추억이 된다.

용기백배 황성국
2025년 4월 27일 일요일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 오늘은 원동역에서 물금역을 거쳐 구포역까지, 약 25km 여정을 계획했다. 길이 정비된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천천히 걸을 생각이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세시봉 친구들'의 노래를 틀고,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맞췄다.
숙소를 나서는데 여주인께서 창문을 열고 인사를 건넨다. "자전거 타고 오신 줄 알았어요. 걸어서 오셨군요." 편의점 하나 없는 시골마을, 삼거리 식당을 알려주시며 아침 인사를 건네셨다. 따뜻한 인심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원동마을은 아침 햇살에 더욱 빛났다. 웅장한 산을 뒤로 하고, 낙동강이 잔잔히 흐르는 풍경. 작은 마을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있어 추어탕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주인은 이 마을이 매화와 미나리 축제로 유명하다며, 축제철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고 했다.
9시 30분, 원동역에 도착해 인증사진을 남겼다. 역 앞 안내판에는 "낙동강 낙조와 함께하는 원동마을"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별 기대 없이 오른 '낙동강 조망 테크길'은 뜻밖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낙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자전거 여행객들도 포토존에서 저마다 포즈를 잡으며 추억을 남긴다. 나도 삼각대를 펼쳐 기념사진을 찍었다.
길을 걷다 시비 하나를 발견했다. 홍수진 시인의 시였다. 알고 보니 가수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 실제 모델이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바닷가 오두막에서 푸른 파도를 마시며 살았다는 친구 이야기. 나도 그런 '낭또'의 삶을 꿈꾼 적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윤현진 순국기념비'와 '박정숙 전적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궁금증에 스마트폰을 켜 찾아봤다. 윤현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고, 박정숙은 한국전쟁 당시 첩보활동 중 전사한 여성이다. 이 작은 마을에도 역사의 무게가 스며 있었다.
한낮이 되자 햇볕은 뜨거워졌다. 2차선 도로 갓길을 따라 걷는 길은 고됐다. 우연히 만난 딸기 판매 어르신께서 "요즘 농약 안 치니 바로 먹어도 괜찮다"며 싱싱한 딸기를 권해주셨다. 그늘에 앉아 딸기 한입 베어 물며, 귀농해 농사를 짓는 딸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까지 걸어왔다니 놀라시며 힘내라 격려해주셨다. 길 위의 만남은 짧아도 마음을 데운다.
다시 낙동강 자전거길로 접어들었다. '수라도' 문학현장 표식판이 눈에 띈다. 소설가 김정한이 낙동강 하류를 배경으로 그린 비극의 역사, 언젠가 시간을 내어 꼭 읽어보고 싶다.
1시 15분, 양산 물문화관 앞 국토종주 자전거 인증센터에서 잠시 쉬었다. 예전에 자전거로 국토종주하며 도장을 찍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자전거길은 편의시설이 드물다. 배가 고파 1시 40분쯤 식당을 찾아 비빔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2시 15분, 물금역 도착. 황산공원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4시 40분, "현 위치 부산"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부산 땅에 들어선 것이다! 카메라로 표지판을 찍고, 응원해준 사람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길 위에서 받은 수많은 응원들이 오늘을 만들었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김해에서 태어났지만, 국민학교 시절 4년을 부산에서 보냈다. 이후 청춘의 7년, 그리고 다시 8년. 총 20년을 부산에서 살았다. 그래서 때로 나는 스스로를 '부산 머시마'라고 부른다.
6시 무렵, 화명역을 지나쳤다. 화명 신도시 개발로 새로 생긴 역이다. 화명과 구포는 신도시로 탈바꿈해, 어린 시절 기억 속 구포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구포역이 가까워질수록 낙동강 위로 해가 뉘엿뉘엿 내려앉았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저녁이다. 아쉽게도 멋진 노을은 없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에도 저녁은 찾아왔다. 인생이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그냥 인생이니까.
7시 10분, 구포역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린 역 앞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을 남겼다. 오늘의 걸음은 45,482보, 34.53km였다.
오늘, 그리고 이 긴 여정에서 남은 것은 발자국들. 이런 흔적이 결국 추억이 된다.
용기백배 황성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