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목장성 비사(秘史)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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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안면도는 그 이름처럼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섬이 아니었다.

그곳은 왕의 말들이 길러지던 거대한 국영 목장이었다. 조정은 섬 둘레를 따라 돌을 높이 쌓아 목장성(馬場城)을 세웠다. 말이 달아나지 못하게 막는 울타리였고, 동시에 그 안의 백성들까지 함께 가두는 성벽이었다.

성벽 끝자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외딴 초가에 한 늙은 여인이 살았다. 사람들은 그저 ‘말 할미’라 불렀다.

할미에게 말은 짐승이 아니었다.

말은 밥이었고, 벗이었고, 살아온 세월의 마지막 이름이었다.

나라의 말을 맡아 기르는 대가로 그녀는 해마다 보리 몇 되와 세금 면제를 받았다. 겨울이면 그 보리로 죽을 쑤어 연명했다. 말이 병들면 할미의 밥상도 비었다.

밤이면 할미는 마구간에 기대앉아 말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오늘은 바람이 독하구나.”

“낮에 관리 놈이 또 성을 냈다.”

“그래도 너는 내 말을 들어주는구나.”

말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콧등으로 할미의 어깨를 밀었다.

그럴 때마다 할미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뒤 처음으로 사람 곁에 있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그 말은 그녀의 자존심이었다.

이름도 없는 늙은 여인이었으나, 왕실의 인장이 찍힌 말을 가장 윤기 나게 길러내는 사람. 그것만이 세상 앞에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자부심이었다.

그해 봄, 안면도에 큰 가뭄이 들었다.

풀밭은 누렇게 타버렸고, 우물 바닥은 갈라졌다. 말들은 갈비뼈가 드러났고, 관리들의 눈매는 날마다 더 사나워졌다.

“왕의 말이 야위면 네 목숨도 야윈 줄 알아라.”

할미는 대답 대신 허리를 굽혔다.

며칠 뒤, 그녀는 결심했다. 성벽 너머 육지 갯벌 근처에는 아직 푸른 풀이 남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할미는 새벽 물때를 타고 낡은 조각배를 밀어 바다로 나갔다.

떠나기 전, 그녀는 말의 이마를 짚고 말했다.

“얘야, 조금만 참거라. 내가 네가 좋아하던 어린 풀을 베어 오마.”

말은 낮게 울었다.

할미는 그것을 대답이라 믿었다.

육지에 닿자 할미는 하루 종일 낫을 휘둘렀다.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고 손등은 가시에 찢겼다. 그래도 망태기에 푸른 여물이 차오를수록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저 녀석이 냄새를 맡고 먼저 달려오겠지.’

해가 기울 무렵, 할미는 망태기를 짊어지고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포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마구간 앞에 이르렀을 때, 빈 말뚝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낡은 고삐는 끊겨 있었다.

할미의 손에서 망태기가 떨어졌다.

“…얘야?”

대답은 없었다.

잠시 뒤 그녀는 성벽 아래 작은 틈을 보았다. 겨울마다 땔감을 몰래 들이려 손수 돌 몇 개를 빼내 두었던 구멍이었다. 말굽 자국이 그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살자고 만든 길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는 길이 되어 있었다.

할미는 망태기를 다시 둘러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얘야! 어디 가느냐!”

해안선을 따라, 모래밭을 지나, 칼날 같은 바위틈을 넘어 달렸다.

“거긴 안 된다! 그 앞으로는 바다다!”

말굽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할미는 숨을 몰아쉬며 절벽을 올랐다.

쿵.

또 들렸다.

그녀는 절벽 끝에 다다랐다.

…파도였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이 바위 아래에서 말굽 소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저 멀리 육지의 불빛이 깜빡였다.

배고픈 말은 저 불빛을 초원으로 착각하고 어둠 속으로 달려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미는 주저앉았다.

말 한 필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내일의 밥을 잃었고, 밤의 대화를 잃었고, 평생 붙들고 있던 쓸모를 잃었다.

할미는 망태기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나 여기 있을 테니…”

바람이 대답 대신 지나갔다.

“배가 고프면 돌아오너라.”

기다림은 처음엔 하루였다.

하루가 열흘이 되고, 열흘이 한 철이 되었다.

비가 오면 할미의 어깨에 고였고, 눈이 오면 무릎 위에 쌓였다. 머리카락엔 해초가 엉기고, 발등엔 조개가 들러붙었다.

그래도 그녀는 망태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곧 오겠지.”

살결은 소금기 속에서 굳어갔다.

주름진 손은 돌처럼 굳었고, 굽은 등은 바위의 능선이 되었다.

가슴에 안은 여물마저 돌결 속에 묻혔다.

마침내 할미는 바위가 되었다.

수백 년이 흘러 목장성은 무너지고 왕의 말들도 사라졌다.

그러나 안면도 바다 앞에는 지금도 한 노파의 형상을 한 바위가 서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할미바위라 부른다.

썰물이 되어 바닷길이 열리면 바위 둘레로 작은 돌조각들이 반짝인다. 섬사람들은 그 돌들을 함부로 밟지 않는다.

너무 늦게 도착한 진심의 부스러기라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안면도의 꽃은 서울보다 늦게 진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이 섬의 시간을 아직도 붙들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그 뒤로 할미는 바위가 되어 바람아래 바다를 바라보며 오가는 이들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본래 안면도 앞바다는 풍랑이 거세어 세곡선들이 자주 난파되곤 했다. 나라에서는 이를 해결하고자 안면 반도에 운하를 파서 지금의 안면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바람아래 바다에 붉은 노을이 곱게 물드는 날이면, 하늘 저편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구름을 가르며 말들이 내려와 할미바위 곁에 머문다고 한다.

그러면 할미는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말 등에 올라타고 붉게 물든 하늘길을 따라 저 멀리 떠나간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노을이 아름다운 날이면 바다를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도 할미가 하늘로 가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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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바탕 안면도는 조선 시대 국가가 말을 기르던 목장이 있던 지역으로 전해진다. 조선은 해안과 섬 곳곳에 국영 목장을 두었고, 안면도 역시 그러한 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는 목장과 성터의 흔적, 그리고 할미바위 같은 전설이 남아 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역사와 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풀어낸 허구의 이야기이다.

안면읍 꽃지해수욕장의 '할미 할아비 바위'가 매우 유명하다. 고남면 장곡리 바람아래해수욕장에는 ‘할미바위’가 있다. 할머니의 오두막 뒤편으로는 거친 돌을 쌓아 올린 목장성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고남면의 해안을 따라 세워진 그 성벽은 말에게는 자유를 빼앗는 울타리였고, 할머니에게는 왕실의 엄격한 규율 그 자체였다. 말이 그 성벽의 틈을 타고 바람아래 바다로 달아났을 때, 할머니가 넘지 못한 것은 돌무더기 성벽이 아니라 평생을 갇혀 지낸 운명의 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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