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피던 교정, 장곡분교를 아는가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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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무는 마을에는 지금은 문을 닫은 작은 분교가 하나 있다. 비록 폐교가 되었지만 옛 학교의 정취를 고스란히 품은 채, 지금은 마을 주민들의 소중한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득 이 공간의 옛이야기가 궁금해져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1968년, 생기와 활력이 넘치던 시작 이 학교는 1968년 3월 1일, '고남국민학교 장곡분교장'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안면도 남쪽 끝자락에 살던 장곡리 아이들의 먼 통학 불편을 덜어주고, 더 많은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당시는 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의 아이들이 한창 자라나던 시절이었다. 개교 초기와 1970년대 전성기에는 전교생이 50~80명에 달할 정도로, 교정은 늘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생기로 활력이 넘쳤다.

소금꽃 피던 염전과 바람아래해수욕장 당시 분교는 일반 교실 3실과 교무실, 그리고 교사들이 머물던 작은 사택(숙직실)으로 구성된 아담한 단층 건물이었다.

학교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하얗게 빛나던 염전이 펼쳐져 있었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교실 안까지 불어오곤 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바람조차 쉬어간다는 아름다운 '바람아래해수욕장'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자연 전체가 가장 훌륭한 놀이터였다.


1995년, 27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업 중심의 농촌을 떠나 공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한 도시로 인구가 대거 이동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이 시작되며 농어촌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여러 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복식 학급'으로 축소 운영되다가, 결국 폐교 직전에는 전교생이 단 6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장곡분교는 1995년 3월 1일, 27년의 아련한 역사를 뒤로한 채 본교인 고남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서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학교는 사라졌지만, 장곡리 421-5번지 일원의 옛 분교 부지(약 1,000평)는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과거 아이들이 뛰어놀던 교사와 사택 자리에는 현재 '장곡1리 다목적회관'이 든든하게 들어서 있다. 또한, 주민들의 건강과 활기찬 여가를 책임지는 장곡리 보건진료소와 장곡 게이트볼장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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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옛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도 교정 한편에는 책을 읽는 '독서하는 소녀상'이 그대로 서 있고, 정문의 빛바랜 교문 흔적 역시 고스란히 남아 옛 추억을 증언한다. 다만, 과거 학교 앞을 하얗게 수놓으며 소금꽃을 피워내던 염전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제 태양광 발전소로 변모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비록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아이들의 함성은 멈추었지만, 이 자리는 여전히 마을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주민들의 자치 회의와 다양한 문화 활동이 열리고, 어르신들의 따뜻한 쉼터(사랑방)가 되어주며 마을 공동체의 중심 공간으로 소중하게 활용되는 중이다.

이 아담하고 따뜻한 분교 운동장에 서서, 한 편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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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이 외딴섬 마을 분교로 첫 발령을 받아왔던 스무 살의 젊은 선생님이 계셨다면 어땠을까?"


어느덧 일흔다섯의 황혼이 되어 자신이 젊음을 바쳤던 옛 사택 자리를 찾아온 선생의 시선으로, 그 시절의 찬란했던 추억을 돌아보고 이제는 환갑을 넘겼을 제자들을 생각하는 글을 작성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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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백배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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