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울산에 사는 형님이 점심을 함께하자 연락을 주셨다. 오늘 여정은 청도역을 출발해 상동역에서 형님과 만나고, 다시 밀양역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아침 8시, 청도역 앞에서 출발 사진을 남기고 길을 나섰다.


청도천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택했다. 국도를 지름길 삼아 가는 대신, 조금 멀더라도 하천길을 걷는 편이 좋았다. 자전거도로는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청도천변 풍경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차가운 봄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왔지만, 걷기에 불편은 없었다.

길가에는 파크골프장이 있었다. 이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곳곳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산비탈에는 커다랗게 새긴 글자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 시간에 '나의 조국' 노래에 맞춰 제식 훈련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라떼는 말이야,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길을 걷다 보니 청도 레일바이크가 나타났다. 청도천을 따라 달리는 철로 위를 사람들이 웃으며 지나갔다. 자동차와 기차는 터널을 통해 산을 넘어가지만, 나는 하천 옆길을 따라 터널을 우회했다. 어제 넘었던 남성현 고개처럼 힘든 오르막이 없어 다행이었다. 흐르는 물은 막히면 돌아간다.
청도는 미나리도 유명하다. 미나리 하우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 — 사람과 짐승들의 먹이사슬 끝에 남은 찌꺼기가 미나리밭으로 흘러갔다는, 진흙 속에서 향기를 품던 미나리. 물론 지금은 달라졌다. 그래도 라떼는 말이야, 그랬어.
청도 시조공원에도 들렀다. 이영도 시인의 '보리고개' 시비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사흘 안 끓어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 누름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보릿고개 시절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던 꼬마가 부르던 '보릿고개'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새마을운동과 보릿고개' — 웃으며 '라떼는'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문득 생각했다.

오전 11시 50분, 경상남도 밀양시 표지판이 나타났다. 드디어 경남 땅이다. 12시 15분, 상동역에 도착하니 형님과 형수님이 먼저 와 계셨다. 준비해 간 현수막을 펼쳐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형님은 올해도 고추와 호박을 심으신다고 한다. "조금만 심는다"고 하시면서도 웃으셨다. 걸으면서 먹으라고 땅콩까지 챙겨주셨다. 먼 길까지 와서 응원해주신 형님 부부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밀양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도로를 따라 걷는다. 햇볕은 점점 뜨거워졌고, 그늘을 찾아 쉬며 물을 마셨다.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시름시름 말라가는 산을 보니 마음도 아팠다.
그때, 한 청년이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까지 가느냐 물었더니 "서울에서 부산까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같은 여정이라고 하니 반갑게 웃었다. 군복 티셔츠를 입은 그는 전역한 지 1년 된 청년이었다. "비 오는 날도 쉬지 않고 걸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든든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빠른 그의 발걸음은 곧 멀어졌다. 젊은 세대여, 도전하는 모습이 참 멋지다. 라떼는 가고, 얼죽아 시대가 오고 있구나.

밀양 시내에 가까워지자 '한국 100km 걷기대회' 리본이 길가에 매달려 있었다. 100리도 아니고 100km를 걷는 대회라니. 우리나라 걷기 열풍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밀양의 상징, 영남루가 강 건너 언덕 위에 보인다.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나도 서둘러 사진을 남겼다. 밀양 거리에서는 영화 '밀양'과 '밀양아리랑'이 떠올랐다.
날좀보소 날좀보소 날좀보소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세상은 무관심하다. 그래서 더더욱 "날 좀 보소"라 외쳐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해야 할까.
오후 6시 40분, 드디어 밀양역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밀양아리랑' 가사가 새겨진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밀양역은 공사 중이라 인증샷을 남길 자리를 찾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남겼다. 오늘 하루, 총 45,982보, 34.86km를 걸었다. 늦은 저녁으로 밀양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오늘 여정을 마무리했다.

용기백배 황성국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울산에 사는 형님이 점심을 함께하자 연락을 주셨다. 오늘 여정은 청도역을 출발해 상동역에서 형님과 만나고, 다시 밀양역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아침 8시, 청도역 앞에서 출발 사진을 남기고 길을 나섰다.
청도천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택했다. 국도를 지름길 삼아 가는 대신, 조금 멀더라도 하천길을 걷는 편이 좋았다. 자전거도로는 정갈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청도천변 풍경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차가운 봄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왔지만, 걷기에 불편은 없었다.
길가에는 파크골프장이 있었다. 이른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곳곳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산비탈에는 커다랗게 새긴 글자도 보였다. 고등학교 시절, 교련 시간에 '나의 조국' 노래에 맞춰 제식 훈련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라떼는 말이야, 그런 시절이 있었다.
청도는 미나리도 유명하다. 미나리 하우스들이 줄지어 있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 — 사람과 짐승들의 먹이사슬 끝에 남은 찌꺼기가 미나리밭으로 흘러갔다는, 진흙 속에서 향기를 품던 미나리. 물론 지금은 달라졌다. 그래도 라떼는 말이야, 그랬어.
청도 시조공원에도 들렀다. 이영도 시인의 '보리고개' 시비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사흘 안 끓어도 솥이 하마 녹슬었나
보리 누름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보네
보릿고개 시절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던 꼬마가 부르던 '보릿고개'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새마을운동과 보릿고개' — 웃으며 '라떼는'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문득 생각했다.
오전 11시 50분, 경상남도 밀양시 표지판이 나타났다. 드디어 경남 땅이다. 12시 15분, 상동역에 도착하니 형님과 형수님이 먼저 와 계셨다. 준비해 간 현수막을 펼쳐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형님은 올해도 고추와 호박을 심으신다고 한다. "조금만 심는다"고 하시면서도 웃으셨다. 걸으면서 먹으라고 땅콩까지 챙겨주셨다. 먼 길까지 와서 응원해주신 형님 부부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때, 한 청년이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까지 가느냐 물었더니 "서울에서 부산까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같은 여정이라고 하니 반갑게 웃었다. 군복 티셔츠를 입은 그는 전역한 지 1년 된 청년이었다. "비 오는 날도 쉬지 않고 걸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든든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떠났다. 빠른 그의 발걸음은 곧 멀어졌다. 젊은 세대여, 도전하는 모습이 참 멋지다. 라떼는 가고, 얼죽아 시대가 오고 있구나.
밀양 시내에 가까워지자 '한국 100km 걷기대회' 리본이 길가에 매달려 있었다. 100리도 아니고 100km를 걷는 대회라니. 우리나라 걷기 열풍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밀양의 상징, 영남루가 강 건너 언덕 위에 보인다.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나도 서둘러 사진을 남겼다. 밀양 거리에서는 영화 '밀양'과 '밀양아리랑'이 떠올랐다.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보소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세상은 무관심하다. 그래서 더더욱 "날 좀 보소"라 외쳐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말해야 할까.
오후 6시 40분, 드디어 밀양역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밀양아리랑' 가사가 새겨진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밀양역은 공사 중이라 인증샷을 남길 자리를 찾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남겼다. 오늘 하루, 총 45,982보, 34.86km를 걸었다. 늦은 저녁으로 밀양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오늘 여정을 마무리했다.
용기백배 황성국